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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일본부설1 다운받기 RR

  • essbarr7444
  • 2020년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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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일본부설1


임나일본부설1


임나일본부설

임나란?


상고시대에 경상북도 고령 지방에 있었던 부족국가.

임나 가야의 줄임말로, 신라에서는 금관가야 다음에 6가야의

맹주국 (盟主國)이었다고 하여 대가야라고 불렀다.

그 본명은 미마나(彌摩那, 또는 임나)인데,

일본의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미마나 일본부[任那日本府] 등으로

기록된 것을 근거로, 일본 학계가 일본의 가야 지배 설을 주장하여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임나의 위치

일본의 야마토 왜가

4세기 후반에 한반도 남부지역에 진출하여

백제·신라·가야를 지배하고

특히 가야에는 일본부 라는 기관을 두어

6세기 중엽까지 직접 지배하였다는 설.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조선 지배를 정당화 하고 있으며 과거 조선

침략을 침략이라 생각하지 않고 회복이라고 생각함.


현재 일본의 교과서에 수록되어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편견과 우월감을 조장하고 있음.


일본인과 한국인은 본래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다는 일선 동조론과 함께 표리관계를 이루면서 35년간의 식민통치를 합리화하는 관념적 버팀대로서 기능을 함.



일본교과서 사진 (후쇼사 역사교과서)


고구려는 반도 남부의 신라와 백제를 압박 →

백제는 야마토 조정에 구원을 요청함 →

4세기 후반, 야마토 조정은 바다를 건너 조선으로 출병 →

야마토 조정은 반도 남부의 임나(가야)라는 곳에 세력권을 차지함 →

일본의 역사서에서 여기에 두어졌던 일본의 거점을 임나 일본부라 부름.

고구려는 남하정책 →

야마토 조정의 군대는 백제와 신라를 도와 고구려와 격렬하게 싸움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문에 사건기록)

고구려 백제 공략하여 반도남부를 석권함 →

백제와 임나를 기반으로 한 일본군의 저항 → 정복 못함


일본서기에 의하면 진구 황후가 보낸 왜군이 369년 한반도에

건너와 7국과 4읍을 점령하고 그 뒤 임나에 일본부가 설치되었고

562년 신라에 멸망하였다고 함.


일본은 369년부터 562년까지 약 200년간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으며

중심기관이 가야에 두어진 임나일본부라는 것임.


광개토대왕비의 내용도 근거로 드는데, 이 설과 관련된 비문의 내용을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임나·신라 등을 격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고 해석하여 당시 왜국의 한반도 남부 지배를 알려주는 결정적

증거라고 주장함.

광개토대왕비문의

이른바 신묘년 기사임

“倭以辛卯年

渡海 破百殘 ○○○羅 以爲臣民”이

그 내용인데 그들은

왜가 신묘년 바다를 건너와

백제 가야 신라를 격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고 해석하면서

한반도남부의 지배를 기정사실화함.



일본 서기는 8세기 초, 일본의 왕가(천황가)를 미화하기 위해 저술된 것으로, 5세기 이전의 것은 신화적 전설로 간주하는 등 그 신빙성에 의문이 많은 책.


일본 서기보다 먼저 저술된 ‘고사기’에는 임나 일본부에 대해서

전혀 언급이 없다든지 4세기의 일본은 열도조차 통합시키지 못한

상태 였기에 해외 침략의 여력이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위의 일본측

근거는 믿을 수가 없음.


일본이라는 국호도 7세기에 들어 와서야 사용되는데, 그 이전에

일본부라는 용어가 있었다는 것은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음.

일본측의 해석과 다르게 앞 부분의 주어는 왜이지만 뒷부분의 주어는

고구려로 볼 수도 있음


“왜가 신묘년에 건너왔기에 (고구려가) 백제 (또는 왜)를 격파하고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라는 해석.


이 비문은 광개토 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지 일본의 칭송을

위한 것은 아니며 광개토대왕 비 이기에 당연히 곳곳에 주어를

생략하고 있음.


1970년대 여러 사진·탁본·해독문을 조사한 후, 일본 육군 참모부에

의해 상당 한 비문 변조가 행해졌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도 있기에

비문 자체의 내용조차 그 신빙성이 의문.

200여 년 간 왜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면 한국측 기록에 조그만

단서라도 남아 있을 텐데 그러한 기록이 전혀 없으며 유물이나 유적

또한 전무함.


당시 일본 열도는 통일 제국이 형성되지 못한 분국 형태였고

바다 건너 식민지를 경영할 수 있었는지 의문.


식민지 경영의 필요성에 대한 명백한 이유를 제시 못함.


고고학 연구에 의하면 당시 가야는 왜보다 약 반 세기 앞선

선진 문화를 구축하고 있었는데 왜의 가야 지배가 가능했는지 의문.

출선기관설 (出先機關說)


기마민족설 (騎馬民族說)


가야(伽倻)의 왜설 (倭說)


분국설 (分國說)


백제군사령부설 (百濟軍司令部說)


외교사절설 (外交使節說)



녹둔도


둘레 약 8㎞이며1800년대 이후 두만강 상류의 모래가 유속에 밀려 내려와 녹둔도와 그 대안(對岸) 사이에 퇴적하여 육지와 연결됨


1990년 무렵에는 100호의 인가가 있어 벼·조·옥수수·보리 등이 재배되었고 주변에서는 연어·붕어 ·황어·숭어 등이 주로 잡히는 것으로

기록됨


조선 세종 때 여진족의 약탈을 막기 위하여 섬 안에 길이 1,246척의 토성을 쌓고 높이 6척의 목책을 둘러 병사들이 방비하는 가운데 농민들이 배를 타고 섬을 오가며 농사를 지음



1860년(철종 11) 청나라와 러시아의 베이징조약 체결로 러시아 영토가 되어버린 것을 1889년(고종 26)에야 비로소 알고 청나라측에 항의 ,

이의 반환을 요구하였으나 실현되지 않음.


1984년 11월 북한과 소련 당국자 간에 평양에서 국경문제에 관한

회담을 열어 관심을 끌었으나 미해결인 채로 끝났으며 1990년에는

직접 러시아 공사에게 섬의 반환을 요구하였으나 역시 실효를 거두지

못함



간도


간도는 부여와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임


19세기 말 고종 때 한반




[문서정보]


문서분량 : 37 Page

파일종류 : PPT 파일

자료제목 : 임나일본부설1

파일이름 : 임나일본부설1.ppt

키워드 : 임나일본부설,임나일본부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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