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파, 소수파 보고서와 노령연금 레폿 LL
- essbarr7444
- 2020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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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파, 소수파 보고서와 노령연금 레폿
다수파, 소수파 보고서와 노령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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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파, 소수파 보고서와 노령연금
목차
* 다수파 · 소수파 보고서와 노령연금
Ⅰ. 다수파 · 소수파 보고서
Ⅱ. 노령연금
* 참고문헌
* 다수파 · 소수파 보고서와 노령연금
빈민법은 무수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으나 그 생명은 매우 길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8년 노동당 정부가 국민부조법을 제정함으로써 빈민법은 비로
소 완전히 폐지되었는데, 1601년 엘리자베스 빈민법 이후 실로 3백5십여 년만의
일이었다. 국민부조법은 그 부제를 `기존의 빈민법을 종료시키는 법`이라고 했을
정도로 빈민법의 폐지를 분명히 했는데, 여기에는 과거 빈민법에 대한 노동자계
급의 거부감이 반영되어 있었다.
그런데 1834년 빈민법 개정 이후 1948년 종료에 이르는 기간 중에 빈민법 체
계에 있어 매우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 1905년 왕립빈민법위원회의 성립과
1909년의 다수파 ?소수파 보고서, 그리고 1908년의 노령연금이 그것이다.
1. 다수파 ? 소수파 보고서
1834년 신빈민법은 자본주의의 진전이라는 현실을 도외시한 조치로서 농촌형 부랑자와는 질적으로 다른 실업자 문제에 무기력하였다. 20세기 초 들어 실업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자 빈민법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
1905년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왕립빈민법위원회(the Royal Commission on the Poor Law and Relief of Distress)가 구성되었다. 동 위원회에는 보수주의자, 자유주의자, 페이비언 사회주의자 등 다양한 성향의 인사들 20명이 위원으로 참여하였는데(위원장은 보수당의 George Hamaton 경), 심각한 의견 차이로 결국 1909년 두 개의 보고서, 즉 다수파 보고서와 소수파 보고서를 낼 수밖에 없었다.
다수파 보고서는 보수주의자들의 의견을 담고 있었고, 소수파 보고서는 저명한 페이비언 사회주의자 웹 부부의 작품이었다.
다수파와 소수파는 빈민과 빈곤정책에 대한 기본적 시각부터 달랐다. 다수파
는 빈곤의 원인을 개인의 생활태도, 즉 빈민의 나태와 무책임에서 찾았다. 그래
서 빈민의 자활의지를 불신했으며, 빈민에게는 관대한 동정보다는 가혹한 조치
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소수파는 빈곤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불합리
하고 불건전한 사회질서의 결과로 보았으며, 빈곤의 해결을 위해 공공지출이 불
가피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구빈행정의 운영방식에 관해서도 입장을 달리 했다.
다수파는 현행 구빈제도의 개혁을 통한 유지 ? 존속을 주장한 반면, 소수파는 빈
민법의 완전한 페기를 주장했다. 구빈행정에 대한 다수파 보고서의 주요 권고사
항은 다음과 같다.
(1) 중앙 관청(당시의 지방정부청)의 지위가 격상되어야 한다. 즉, 관청의 장이
장관급이 되어야 한다.
(2) 지방행정은 시 ? 군의회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
(3) 빈민법의 명칭을 공공부조(Public Assistance)로 변경해야 한다.
(4)작업장 입소자는 분류 보호를 받아야 하며, 가능한 한 치료적이고 회복적인
처우를 받도록 한다.
(5) 원외구호(Outdoor Relief를 Home Assistance로 용어 변경)는 민간기관` 담당한다(다수파 보고서는 구빈행정에서 민간기관과의 협력을 강조하였다).
소수파 보고서의 주요 권고사항을 적기하면 다음과 같다.
(1) 노동능력빈민과 노동무능빈민(impotent poor를 non-able-bodied poor로 용어 변경)은 달리 처우해야 한다.
(2) 노동무능빈민은 지방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단, 각 전문위원회가 이를 분담
하여 담당한다. 예컨대 아동문제는 교육위원회에, 병자는 보건위원회에, 노
인은 연금위원회에, 실업자는 노동성 산하 전문위원회에 그 책임을 맡긴다.
(3) 노동능력빈민에 대한 처우는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일자리를 얻는 데 있어
개인의 책임보다는 국가의 책임을 강조해야 한다. 노동행정을 확대 ? 개편
하고, 정부의 실업방지정책이 강화되어야 하며, 직업소개소 제도가 확립되
어야 하고, 노동자에 대한 직업훈련 프로그램이 확대되어야 한다.
(4) 고의적 실업자는 내무성의 감화원(reformatory colony)으로 보낸다(Jones,
1991 : 91-93).
그러나 이런 근본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정책 대안은 상당히 유사한
면이 있었다. 예컨대 빈민법을 폐지하여 기존의 빈민법 업무의 상당 부분을 지방
정부에 이양한다거나, 정부는 직업소게소의 신설과 실업보험의 실시를 위해 노
력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한편 이 두 보고서가 아주 실질적이고도 실무적인 처방을 담고 있었음에도 실
제 정책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당시 자유당 정부가 다양
한 사회복지정책들을 입안하여 실천에 음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것
이 다음에 살펴볼 1908년의 노령연금이다. 그러나 비어트리스 웹(Beatrice Webb)
이 집필한 소수파 보고서는 영국인의 마음속에 이제 전통적인 빈민법은 폐지되
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심어 놓았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2. 노령연금
1906년 중간계급(부르주아지)에 지지기반을 둔 자유당은 노동자계급과의 연합
전술, 이른바 자유당-노동자 연합(Lib-Lab)에 힘입어 지주계급의 정당인 토리당을
누르고 집권에 성공하였다. 자유당 정부(1906-1915)는 이전의 억압적인 빈민법과
는 질적으로 다른 일련의 개혁적 사회복지정책들을 도입함으로써 영국 복지국가
의 초석을 놓았다(자세한 내용은 본 서 영국의 국민보험 참조). 1908년의 노령연금
은 이런 개혁정책의 하나로 도입되었다.
그런데 노령연금에 관한 논의는 이미 18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1878년 수사
신부 월리엄 블랙클리(Canon William Blackley)가 사람들이 젊을 때 강제 갹출로 연금기금을 조성하여 질병과 노후를 대비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에서 촉발되었던
것이다. 이후 1880년대와 1890딘에 무갹출제와 갹출제를 놓고 상당한
[문서정보]
문서분량 : 6 Page
파일종류 : HWP 파일
자료제목 : 다수파, 소수파 보고서와 노령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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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다수파,소수파,와,노령연금,보고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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